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예전 내가 했던 게임보이의 추억

디자인의 시대이다.
어떤 물건이든지 디자인을 따지게 되는 요즘 시대에서, 휴대용 게임 콘솔 디자인도 마찬가지로 예전부터 많은 변화를 거치며 지금의 단계까지 왔다. 나는 많은 게임들을 좋아하지만 주로 휴대용 게임을 많이 했었다. 간편하고 편리하기 때문이였다. 현재 현실과 게임을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발전된 게임시장에서, 나는 내가 지금까지 보고 경험했던 주관적인 얘기를 써나갈까 한다.  

나는 예전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중학교 때 새벽까지 심즈를 하고, 다마고찌 20개이상을 수집했고, 그 중 피카츄 만보기에 돈 채울려고 평소 걷지도 않던 길을 많이 걸어다닌게 생각난다. 이렇게 얘기하면 엄청난 오타쿠처럼 들리겠지만 그정도는 아니다. (막 여자배게 좋아하고 그정도는 아님) 

때는 바야흐로 게임보이 시절 때로 돌아간다. 처음 내가 휴대용 게임을 접한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친구가 벽돌 비슷하게 생긴 커다란 회색 네모박스를 들고 집중하고 있었다. 
"뭐해?"
"..."
친구는 그 정도로 회색네모기계에 집중하고 있었다. 
손톱크기도 안되는 조그마한 흑백으로 된 사람들이 그 안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너무 오래되서 현재는 기억이 안나지만 재미 있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문방구에서는 문케팅(문방구마케팅)을 모르는 코흘리개들을 현혹하기 위해 많은 게임보이와 닮은 게임기들을 만들어 냈었다. 나는 게임보이를 사려는 생각은 못하고 그와 비슷한 기계를 몇개 구입한 생각이 난다.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가격이 저렴한 기계에서는 비행기 게임밖에 구현이 안되었고 나는 많은 실망을 한 기억이 있다. 

그 뒤 엄마에게 게임보이를 사달라고 했고, 나는 게임보이 라이트를 가지고 많이 놀았다. 게임보이가 처음 나왔을때는 불빛이 들어오지 않아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게임을 못해서 초등학생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게임보이 라이트가 나온 뒤에는 엄마에게 잔다고 뻥치고 이불 안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 편리함을 구현했다. 게임을 하면서 느낀 점은 휴대성이 편리하지만 아쉬운 부분들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생이 들기에 게임 기계자체가 무거워서, 누워서 게임을 하려고 하면 팔에 무리가 많이 가해졌고, 손이 큰 애들은 검지를 게임기계에 펴고 단단히 고정한 다음 플레이를 했었다. 그래서 나 같은 손 크기가 애매한(좀작은) 사람에게는 게임보이 라이트가 엄청난 이점으로 다가왔다. 


게임보이가 나오고 얼마 뒤 다마고치도 나온걸로 기억한다. 다마고치도 게임보이처럼 엄청난 혁신의 바람을 타고 문방구에 들어왔다. 나는 그 당시 개를 좋아했지만, 개 알레르기가 있어서 이웃집 강아지를 만지고 온 날이면 아토피 + 콧물을 물처럼 마시는 병자로 그 날을 버텨야 되었다. 또한 폐렴이 있어서 부모님이 걱정이 많으셨다. 그러던 차, 디지털로 된 흑백 애완 '듣보잡'이 나왔고 나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친구들이 하나씩 사는 것도 사고 다른 것도 샀다. 

정말 다 키워 본거 같다. 외계인도 키웠고, 병아리 비슷한 것, 쥐, 강아지, 고양이,오늘의 운세 가르쳐주는 하트 모양의 살아있는 것, 다마고치끼리 연결하면 새로운 '듣보잡'이 태어나는 혼종등, 내 손을 거쳐가지 않은 것은 많을 것 같지만 많이 키워봤다고 생각한다. 다마고치는 게임보이와는 다르게 어떤 디지털 생물체를 기르느냐에 따라서 외관이 정해져서 나왔는데 보고 바로 판단할수 있어서 편리했다. 다른 다마고치와 마찬가지로 버튼은 모니터 밑에 있었고 2-3가지의 버튼으로 모든걸 결정할수 있었다. 한가지의 버튼은 결정 버튼, 또 한가지는 옆으로 가는 것(초이스), 마지막은 요즘 말하는 '홈버튼'처럼 뒤로가거나 홈으로 갔었다. 

몇 년뒤 게임보이 칼라가 나왔다. 한 친구가 학교로 가져왔고, 친구들 사이에선 난리도 아니였다. 서로 한번 해보겠다고 다퉜고 내 차례가 왔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작은 모
니터에서 나오는 칼라의 빛깔과 말하기 벅찬 사운드와 게임보이 로고를. 그때 당시 게임보이에서 컬러를 본다는건 자그마한 혁신이였다. 칼라의 찬란한 빛깔을 보고 난 뒤 내 방에서 다시 본 흑백모니터는 별로였다. 하지만 게임보이를 산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컬러를 다시 살수 없어 나중에서야 컬러를 샀던 기억이 있다. 


중학교에 진입한 뒤 포켓몬을 접했다. 당시 문방구에서는 "이상해씨" "꼬부기"같은 (나에겐)이상한 듣보잡 캐릭터를 팔고 있었고, 새로운 씨앗 이름인가 생각할 정도로 포켓몬에 대해 몰랐었다. (그 당시 농작물씨앗도 팔았음) 어느날 나는 포켓몬 1세대라 불리는 151마리의 이름들은 전부 외우고 있었고 친구들과 포켓몬 빵, 포켓몬 게임을 했었다. 하루는 친구가 나에게 잠만보를 잡기 위해 친구 게임보이로 잡아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놀이터에서 자그마치 1시간을 그 돼지놈 잡을려고 소비한 끝에 포켓볼을 전부 소진하고 잡았던 기억이 있다. 다 커버린 지금 만약 포켓몬을 다시 한다면, '내가 포켓몬을 한다고 돈이 될까' 라는, 세상에 찌든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초등학교 때의 한낯 존재하지도 않는 괴물 때문에 열정적이였던 내가 현재 낯설다. 


게임보이에서 포켓몬을 한창 열정적이게 하던 나는 더욱 간편한 방법을 찾았다. 불법 복제 포켓몬 게임이였다. 게임보이는 가는 속도도 느리고 치트도 먹히지 않는 반면, 불법 게임 에뮬레이터로 돌리는 포켓몬 게임은 '레어캔디'라는 아이템을 써서 포켓몬을 렙업 할수 있었고, 치트는 물론 빠르게 체육관을 돌고 맵도 빨리 갈수 있었다. 또한 다운이 가능해서 돈도 안들고 훨씬 더 큰 화면에서 게임을 할수 있게 되어 소비자 입장에서는 엄청 좋았다. 그때 뮤츠와 뮤도 치트써서 잡아본 것 같다. 이때 다마고치로 휴대용 게임기를 옮겨 갔고, 게임보이와는 멀어졌다. 

 '플로피 디스크'라는 5mb 짜리 플라스틱 귀여운 가방 비슷하게 생긴 애는 내 포켓몬 게임과 게임보이 에뮬레이터를 전부 담을 수 없었다. 포켓몬 파일이랑 vgb에뮬레이터를 같이 넣으면 4.3mb인가 그래서 에뮬레이터와 레드 블루 옐로우 그린버전을 다 하고 싶었던 나는 플로피 디스크를 3개씩 들고 학교를 다녔다. 학교에서는 한창 컴퓨터 열풍이 불어서 컴퓨터를 가르쳐 주었고, 배운건 피카츄 배구게임 하기와 타자연습이였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플로피 디스크에 있던 포켓몬 게임도 했었다.